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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나 탄 Juliana 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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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 탄이 《종의 기원》(은행나무)의 편집자 이진희에게 묻다

   

Q. 줄리아나 탄 Juliana Tan
《종의 기원》 원고를 처음 받았을 때의 느낌은 어땠나요? 다 읽고 난 후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무엇이었나요?

A. 이진희 Jinny H. Lee
줄리아나 탄 편집자님 안녕하세요. 저는 《종의 기원》 편집을 맡았던 은행나무 출판사 이진희입니다. 이렇게 온라인으로 만나 뵙게 되어 반갑고, 또 《종의 기원》 인도네시아판을 편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집자님이 질문하신 것에 충분한 답을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국 출판시장을 이해하시는 데 도움이 된다면 정말 기쁘겠습니다.

《종의 기원》은 저희가 출간한 정유정 작가의 소설 중 네 번째 작품인데요, 보통 정유정 작가는 2~3년에 한 번씩 장편 소설을 출간하고 있습니다. 원고가 도착하면 대표님과 한국문학팀 전원이 원고를 읽고 그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이나 궁금한 점, 수정사항 등을 며칠 내에 검토해서 피드백을 드리고 있는데요, 아시겠지만 정유정 작가의 작품이 독특하고 흡입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보통 업무시간에 읽을 순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날도 업무가 모두 끝난 후에 저 혼자 사무실에 남아서 읽었습니다. 다 읽고 나니 늦은 밤 11시 정도 됐던 것 같은데, 도저히 계단을 혼자서 내려갈 수 없을 만큼 온몸이 긴장된 상태였던 걸로 기억하고 있어요. 또 그 살인자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놀랍고도 신기한 경험을 했었는데, 어느 순간에는 그 주인공을 연민하고 응원하는 저 자신을 발견하고 섬뜩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Q. 줄리아나 탄 Juliana Tan
편집 전 원고와 최종 원고가 크게 다른가요? 어떤 점이 다른가요?

A. 이진희 Jinny H. Lee
편집 전 원고와 최종 원고가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보통 원고가 들어오면 출판사 내부에서 검토하고 수정요청을 드리는데, 작가마다 받아들이는 경우가 조금씩 다른 것 같아요. 정유정 작가의 경우는 출판사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인데, 《종의 기원》의 경우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처음 원고에는 현재 들어가 있는 프롤로그 원고가 빠져 있었어요. 처음 원고를 받았을 때 독자들이 너무 사건의 한가운데에서 시작되는 것에 부담을 느낄 수도 있겠다 싶어서 프롤로그를 추가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드렸었고, 정유정 작가가 그 부분을 받아들여서 나중에 프롤로그를 추가했습니다.

재미있는 일은 《종의 기원》이 해외에 많이 계약되면서 영미권 출판사의 경우 프롤로그가 도리어 불필요해 보인다는 의견이 있어서 프롤로그를 빼고 출판하게 되었고, 독일어판의 경우에는 문학적인 프롤로그가 필요하다고 해서 원작대로 프롤로그를 추가하게 되었습니다. 인도네시아판에는 프롤로그가 있는지 없는지 궁금하네요.

Q. 줄리아나 탄 Juliana Tan
원고를 편집할 때 주로 어떤 점에 주의를 기울이나요? 《종의 기원》을 편집할 때 어떤 점이 어려웠나요?

A. 이진희 Jinny H. Lee
저희는 원고를 편집할 때 작가가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나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다 잘 전달하는 데 주의를 기울이는 편입니다. 《종의 기원》의 경우 독자들이 다소 불편해할 수 있는 이야기인 점을 감안해서 표지 디자인이나 문구 같은 데서 보다 문학적인 메시지를 강조하도록 신경을 썼습니다. 또한 3일간 벌어지는 이야기를 밀도 있게 쓴 작품이라는 점, 그리고 작가가 디테일한 묘사를 주로 쓴다는 점을 고려해서 사건의 전후 관계나 인물의 동선, 예를 들어 앞에 나왔던 물건이 뒤에 사라지지 않는지와 같은 묘사 부분에서 오류가 생기지 않도록 신경을 썼습니다.

Q. 줄리아나 탄 Juliana Tan
출판할 준비가 될 때까지 전체 원고를 편집하는 데 얼마나 걸렸나요?

A. 이진희 Jinny H. Lee
소설의 경우는 큰 문제가 없다면 보통 원고가 들어온 후에 한 달 반에서 두 달 정도 걸립니다. 이 소설의 경우는 편집자가 관련 자료를 찾거나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 작가와 수정 논의하는 시간이 필요해서 그보다는 더 걸리는 것 같습니다. 《종의 기원》은 작가가 원고를 3월 초에 보내줬는데, 저희가 5월 초 일주일간의 예판 기간을 거쳐서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Q. 줄리아나 탄 Juliana Tan
소설 〈종의 기원〉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나 장면은 무엇인가요?

A. 이진희 Jinny H. Lee
《종의 기원》은 장면이나 스토리도 강렬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기억에 남는 문장들이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사이코패스의 내면을 그리는, 또 어찌 보면 아주 끔찍할 수 있는 장면들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어떻게 이렇게 문학적인 문장을 쓰셨나 놀랄 때가 많았죠.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문장은 제가 표지에도 뽑아 쓴 문장입니다. “운명은 제 할 일을 잊는 법이 없다. 한쪽 눈을 감아줄 때도 있겠지만 그건 한 번 정도일 것이다. 올 것은 오고 벌어질 일은 끝내 벌어진다. 불시에 형을 집행하듯 운명이 내게 자객을 보낸 것이었다. 그것도 생에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정신과 약을 끊은 후에 유진이가 수영 대회에 나가서 고백하는 장면인데요, 이게 마치 나중에 자기가 사이코패스로 살아갈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는 듯한 상징처럼 보여서 무척 마음에 남았던 문장입니다.

《종의 기원》을 살펴보시면 이렇게 빛나는 문장들이 곳곳에 많이 숨겨져 있는데요, 독자들이 스토리에 몰입하다 보면 이 문장들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잘 못 찾으시면 많이 아쉬울 것 같아요.

Q. 줄리아나 탄 Juliana Tan
정유정 작가와의 커뮤니케이션은 어땠나요?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작업했나요? 어떻게 정유정 작가 작품의 편집자가 되었나요?

A. 이진희 Jinny H. Lee
정유정 작가는 현재 한국 문학 시장에서 탄탄한 독자층을 확보한 중요한 작가입니다. 저희는 10년 이상 정유정 작가의 작품을 출간해오면서 작가의 작품 세계라든지 스타일에 대해서 많이 이해하고 있고, 정유정 작가도 저희 출판사와 일해오면서 출간 프로세스에 대해 많이 이해하고 있는 편이라 커뮤니케이션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종의 기원》 이외에 다른 작품의 경우 교정 작업을 전담하는 책임 편집자가 따로 있기는 하지만, 대표님도 저도 디자인이라든지 편집이라든지 마케팅 같은 전 분야에 걸쳐서 의견을 많이 제시하고 관여하는 편이라 거의 전사적인 프로젝트로 진행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Q. 줄리아나 탄 Juliana Tan
한국에서는 작가가 작품을 출판사에 어떻게 제출하는지요? 미국이나 영국처럼 에이전트가 있어야 하나요?

A. 이진희 Jinny H. Lee
한국에서는 아직 작가 에이전시가 그렇게 보편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요즘 들어서 소수의 그런 움직임이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 흔하지는 않습니다. 보통은 역량 있는 소설가에게 출판사가 다음 작품 계약을 제안하고, 원고가 완성되면 출간하는 방식입니다. 원고는 1년 이내에 완성되기도 하고, 10년 이상 기다려야 할 때도 있긴 하지만 좋은 작가의 좋은 작품을 출간하기 위해서는 기다리는 시간을 감수하는 편입니다. 역으로 작가가 원고를 완성해서 출판사 편집자나 투고를 통해서 출간을 제안하기도 하는데요, 이런 경우는 보통 작가 지망생이나 신인 작가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경우이고, 출간까지 이뤄지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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