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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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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한국
이름박규민
출판사비채(김영사 임프린트)
이메일min@gimmyoung.com

에세이

마지막 줄에 선 조용한 사람들: 한국 문학 출판의 현재

한국 최북단에 있는 물류창고에 다녀온 적 있다. 회사에서 시켜서 가긴 했지만,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다. 어렴풋이 북한이 보일 만큼 외딴 지역에 전국 곳곳에서 만든 책들이 비닐에 포장되어 있었다. 그런 곳에 가면 계산기를 두들겨볼 수밖에 없다. 여기에 책을 보관하는 것 역시 비용 때문이겠지. 땅값이 싼 곳에 창고를 지어야 이익이 그나마 남을 테니까. 책 한 권을 만들기까지 몇 명의 손을 거쳐야 할까. 기획하고 쓰고 디자인하고 제작하고 운송하여 보관과 관리를 해야 한다. 마케팅과 홍보는 말할 것도 없다. 서점에 진열한다고 책이 알아서 팔리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는 어떤지 모르겠다만 한국에서는 대형 서점의 큰 매대를 차지하려면 적지 않은 자본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국 대형 서점에 들어서면 마치 한국 밤거리 네온사인처럼 휘황찬란한 표지들이 자신을 구매해달라며 빛을 발한다.

우리 출판사 '비채'는 문학 서적을 전문으로 다루지만, 어디까지가 문학인가 하는 문제는 늘 우리를 따라다닌다. 오늘날 문학 출판의 화두는 결국 이 질문으로 수렴된다. 가상의 이야기를 쓰면 문학인가? 그러면 논픽션은 문학이 아닌가? 그림이 들어가는 책, 예컨대 만화는 문학인가?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결국 문학이란 당대 독자들의 합의로 정의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비채는 '한국문학에서 세계문학, 본격문학에서 장르문학, 이미지 세대를 위한 비주얼 북까지' 아우른다는 모토로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 중견 시인의 산문집을 출판하지만 젊은 장르 소설가들의 책을 내기도 한다. 장르로 구분될 수 없는 본격문학 신인 소설가들의 책도 기획한다. 마쓰이에 마사시, 미나토 가나에, 우밍이, 아니 에르노 등 세계문학 작가들의 작품도 꾸준히 소개한다. 그뿐 아니라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되는 일명 '인스타툰'을 종이책으로 펴냈고 웹소설의 종이책 출간도 시도 중이다.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은 우리 출판사만이 아니다. 트렌드에 맞는 책을 기획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책들도 시류에 맞게끔 마케팅 전략을 짠다. 드라마 대본집은 전자에 해당할 것이다. 〈그 해 우리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OTT 플랫폼 인기 드라마와 〈헤어질 결심〉 등의 영화 각본집은 스크린뿐 아니라 서점가에서도 널리 사랑받고 있다. 단순히 대본을 종이책으로 엮는 것 이상으로 극중 인물들의 비하인드 스토리, 상세 설정들을 담음으로써 영상물 애청자들이 소장하고픈 책을 만드는 것이다. 오래전 출간했던 책이 영상화되어 다시 주목받는 경우도 있다. 소설 《굿바이, 욘더》의 경우 이준익 감독이 드라마로 제작함에 따라 2022년의 트렌드에 맞게 리커버하여 다시 시장에 내놓게 되었다.

이와 반대로 고전문학을 최근의 시장 상황에 걸맞게 마케팅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한국에서는 옥타비아 버틀러의 소설들이 그렇다. 《킨》 《블러드차일드》 등은 비채의 고전문학 컬렉션으로 출간되었는데, 2010년대 중반부터 페미니즘 이슈가 떠오르기 시작하자 이 작품들을 고전 서가에만 꽂아둘 수는 없게 되었다. 젊은 세대가 선호할 만한 트렌디한 디자인으로 한정판 컬렉션을 출간하여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위즈덤하우스 출판사에서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유명 웹툰 작가의 그림으로 디자인하는 참신한 시도도 있었다.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을 만큼 훌륭한 작품들이 고전이라면, 그 작품을 고리타분한 틀에만 가둬둘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상이 2022년 한국 문학 출판의 단면이다. 책을 만들다 보면 내가 세상에서 가장 느린 사람이 되는 것 같다. 세상은 너무나 빨리 변하는데, 맨 뒷자리에서 느릿느릿 따라가는 기분이랄까. 그럴 때 나는 물류창고의 풍경을 떠올린다. 알라딘의 매직 카펫처럼 기중기 타고 공중을 날아다니며 확인해야 할 만큼 드높게 쌓여 있던, 언젠가 독자를 만나기를 염원하는 책들을. 오늘날 출판의 현황을 보면 새로운 시도도 있고 그렇지 않은 시도도 있으며, 응원하고 싶은 흐름도 있지만 어쩐지 씁쓸한 모습도 있다. 하지만 더디더라도 좋은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마음만큼은 모두가 공유하지 않을까.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마찬가지일 거라 감히 상상한다. 아시아, 나아가 전 세계 출판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달콤한 상상에 힘입어 한국 출판인들은 오늘도 느릿느릿 책을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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