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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참가자정보

정혜지

지난프로그램 / 2020 프로그램 / 정혜지

인터뷰 영상

국가한국
이름정혜지
출판사생각의 힘
이메일hjjung@tpbook.co.kr
출판사 소개
생각의힘은 과학자 알렉산더 폰 훔볼트의 정신을 따라 ‘세상은, 자연은,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 아래 사회, 정치, 경제, 역사, 철학, 과학 분야 등에서 우리 사회의 건전한 담론을 형성하는 데 밑거름이 되는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2012년에 설립됐고, 지금까지 약 120종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대표 도서로는 낮은 곳을 향하는 주류 경제학 이야기인 《99퍼센트를 위한 경제학》, 남자 고등학교 선생님이 쓴 책으로 한국 사회에서 남성도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출간된 책으로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20대가 경험하는 불평등의 본질을 분석하는 《세습 중산층 사회》입니다.

에세이

~더 오래, 더 깊이, 더 기꺼이, 더 열렬히~

코로나19는 그간 우리가 갖고 있던 믿음을 단박에 깨뜨렸습니다. 경제 활동은 몸을 움츠렸고 크고 작은 균열이 생긴 일상생활은 갈래갈래 찢어졌지요. 우리뿐만이 아닙니다. 세계가 동경하던 서구 사회는 갑작스러운 바이러스의 공격에 너무 쉽게 무너졌습니다. 각각의 공동체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도 그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고요. 빈곤, 이주, 인종차별, 고령 사회를 둘러싼 문제가 바이러스 유행과 맞물려 여러 희생과 다양한 갈등을 낳았지요. 현대 과학 기술의 한계 또한 또렷했습니다. 신종 바이러스 앞에서 백신이나 치료제는 생각만큼 뚝딱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바이러스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아주 오랜 과거부터 실천해왔던 ‘사회적 거리 두기(social distancing)’와 얼굴을 덮는 작은 마스크 한 장이라는 사실은 기막힌 패러독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슬프고 혹독한 변화 속에서 다행스럽게도 한 가지 변하지 않은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책을 읽는 일은 아주 안전하다’는 것이지요. 나는 지금부터 이 단순하고도 아름다운 명제에 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코로나19는 그간 우리가 너무나도 가까웠다고 말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그러했고, 사람과 장소가 그러했다고. 그래서 우리는 사람이 밀집한 장소를 피했고, 모임이나 외식, 행사, 여행 등은 취소하거나 기약 없이 연기해야 했습니다. 출퇴근하거나 생필품을 구매하고 의료기관에 방문하는 등 꼭 필요한 외출을 제외하고는 집 안에 콕 머물렀지요. 한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강제적으로 이동을 제한하는 ‘락다운(lockdown)’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민의 자발성에 기반을 둔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는 동안, 계획했던 많은 일이 멈췄고 연기됐습니다. 출판계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평소 많은 인파로 북적이던 서점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요. 도서관도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많은 출판사가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출간 일정은 매달 잡혀 있고, 책 한 권을 내보내기 위해서는 실로 수많은 단계가 움직이고 받쳐줘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책을 출간해도 되는 것일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날이 지날수록, 처음에는 혼란스럽고 불투명했던 우리의 시간이 서서히 차분해졌습니다.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자명했지만, 사람들은 ‘뉴노멀(new normal)’, 그러니까 새로운 일상에 조금씩 몸을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낯설고 불편한 그 과정에서 가장 익숙하고 손에 익은 도구는 단연 ‘책’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오프라인 서점에서 팔랑팔랑 책장을 넘기며 책을 고르는 대신, 온라인 서점에서 클릭하고 스크롤을 내리며 장바구니를 채웠습니다. 이렇게 고른 책은 다음 날이면 별 무리 없이 집에 도착했고, 사람들은 어려움 없이 책으로 돌아왔지요.

활자의 세계에서 마음껏 헤엄을 친 사람들은, 이번에는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에서 해시태그로 연결됐습니다. 직접 얼굴은 마주하지 못하더라도 그 안에서 다정하고 소상한 서평으로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이에 발맞춰 출판사도 이전에 집중했던 오프라인 서점의 매대 광고나 저자와 함께하는 현장 이벤트 대신, 온라인상에서의 홍보와 콘텐츠 생산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온라인상에서 더욱 활발하고 경계 없는 소통의 기회를 제공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영상을 찍어 올렸고, 실시간 채팅의 장을 열었습니다. 덕분에 그간 물리적인 한계로 어려움을 겪었던 독자들은 한결 가뿐하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습니다.

한편, 기획 면에서는 코로나19와 ‘코로나19 이후의 시대’를 말하는 책이 무수히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향한 담론을 담은 책은 언제든 독자의 눈길을 잡아끄는 법일진대, 코로나19라고 다를 것은 없었지요. 아니, 어쩌면 눈에 잡히지 않는 서먹한 미래와 달리 내 살갗에 생생하게 스치는 경험을 한 터라 그에 관한 분석과 전망이 더더욱 갈급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 진행형인 사안인지라, 당연히 ‘정답’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세계가 한바탕 흔들리고 뒤집힌 지금,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미 새 시대는 열렸습니다. 그렇다면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선 자리를,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러한 기획은 당분간 계속되리라 보고, 또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코로나19 이후’의 이후를 들여다보는 부지런함까지 갖추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코로나19가 미친 영향 중 긍정적인 면을 주로 이야기했지만, 두말할 것 없이 부정적인 면 또한 존재합니다. 사실 많은 출판사와 책방이 어두운 터널을 지났지요. 모든 곳이 온라인상에서의 대응에 능숙한 것은 아니었던 까닭입니다. 규모가 작은 출판사나 지역 책방은 아무래도 자본이나 시스템 면에서 가진 한계가 있었기에,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일에 훨씬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울시나 여러 지자체에서 도서를 구매하는 등 이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또 ‘랜선 북클럽’과 같은 모임 지원과 판매 플랫폼을 구축하는 등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지원 사업을 강구 중입니다.

첫 문단에서 ‘책을 읽는 일은 아주 안전하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이 시대 우리는 다른 많은 것으로부터 멀어졌지만, 그만큼 오직 한 가지 대상에는 가까이 다가가게 됐습니다. 다소 고리타분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독서는 오래전부터 정신의 안전을 지키는 일에 이바지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육체의 안전을 지키는 일에도 그 어떤 행위보다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지요. 소설가 정유정 또한 말했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가장 지적이고 적극적인 생존 행위이자 삶의 모의 비행”이라고. 다른 많은 사업은 이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고통의 시간이자 뼈아픈 과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출판계는 아주 다행스럽게도 방향을 틀어야 하는 일은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이와 같은 시기를 거치며 책이 가진 본질에 이전보다 더 깊이 천착해야만 한다는 명분을 얻었습니다. 독자들이 이 안전한 행위를 흔쾌히 지속할 수 있도록, 생산자로서 더욱 치열한 고민과 사유를 거쳐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이 책 안에 더 오래, 더 깊이, 더 기꺼이, 더 열렬히 머무를 수 있도록!

우리는 그간 그 어떤 미래에도 ‘책은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고 믿어왔습니다. 물론 근심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미래는 언제든 책을 먹어치우고, 나 몰라라 하고 입가를 닦을 것만 같았으니까요. 새로운 무언가는 마치 처음부터 그래왔던 양 아주 자연스럽게 책을 대체할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덮은 지금, 다른 많은 것들이 바뀌고 재편되는 속에서도 책은 건재하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언택트(비대면) 사회라고 해서 모든 관계를 끊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상황일수록, 우리는 더 깊고 충만한 관계망에서 위안과 기쁨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니 출판계는 코로나 이전보다 아주 조금 더 무거운 사명감을 떠안는 것이 어떨까요? 많이 무거울 필요는 없습니다. 부담감이 돼 우리를 짓눌러서는 곤란합니다. 그저 아주 조금 더 무거운 사명감으로, 규모가 제한된 이 세계에서 독자들에게 더 큰 감동을 선사합시다. 그것이 출판이 가진 본질이니까요.

'코로나 시대에 함께 읽고 싶은 책' 소개 영상

소개영상

책 정보

세습 중산층 사회
조귀동/생각의 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
김혼비/민음사
임계장이야기
조정진/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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