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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우옌하링 Nguyen Ha Lin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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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우옌 하링이 《딸에 대하여》(민음사)의 편집자 박혜진에게 묻다

 

Q. 응우옌 하링 Nguyen Ha Linh
이 책을 편집할 때 이 책이 다룬 주제 때문에 거리낌은 없었나요? 제가 알기엔 한국은 아직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대해 개방적이지 않다고 알고 있어서 이런 주제의 책을 편집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A. 박혜진 Park Hyejin
안녕하세요. 저는 민음사에서 출간된 김혜진 작가의 《딸에 대하여》를 편집한 박혜진이라고 합니다. 제가 책을 출간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책을 출간한 이후에 느꼈던 여러 느낌과 소회에 대해서 나름으로 정리해서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소설의 경우 다른 장르보다는 좀 더 직접적이기는 하지만, 문학작품의 경우에는 그것이 표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과 그 작품을 통해서 말하고 싶은 궁극적인 주제 의식 사이에는 단순히 일대일 대응으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 관계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딸에 대하여》는 표면적으로는 성소수자인 딸과 그 딸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이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정상 가족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이 이루고 있는 새로운 연대체 혹은 가족 형태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고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여성들이 경험하는 여러 삶의 경로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소수자라는 가시적으로 표현되는 소재에만 포커스를 맞춰서 책을 편집하지는 않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책을 만들면서 이 책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작품은 그 소재를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주제 의식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것을 전달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납득시킬 수 있을지, 여러 갈등 구조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방점을 두었습니다. 또 그 부분에서 사람들에게 논란까지는 아니지만, 논쟁이나 토론 거리를 제공할 수 있을 거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책을 출간하는 데 있어 편집자님이 궁금해하시는, 그 지점에서의 거리낌은 크게 없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응우옌 하링 Nguyen Ha Linh
독자에게 이 작품이 거리낌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하셨나요? 또 독자에게 이처럼 높은 관심을 받게 되었을 때 느낌이 어땠습니까?

A. 박혜진 Park Hyejin
사실 거리낌 없이 받아들여지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이거는 책을 출간하는 편집자들마다 다를 수도 있죠. 어떤 책은 대중들에게 흔쾌히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읽었을 때 바로 위로를 받는다거나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책도 많습니다. 다만, 어떤 책들은 어딘가 불편하게 받아들여지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모종의 진실이 있어서 문학적인 가치를 지니는 작품들도 있다고 생각해요.

김혜진 작가의 《딸에 대하여》 같은 경우는 분명 사람들이 불편하게 여기는 지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주인공 커플인 그린과 레인에 대해서 어머니가 갖는 의식은 편집자님께서도 약간 우려하는 것처럼 불편해하는 부분들이죠. 하지만 그 불편한 지점들에는 부정할 수 없는, 우리 안의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어떤 소수자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만적이거나 혹은 모순적인 생각 또는 양가적인 감정이 모두 내포된 것 같습니다. 타인의 삶일 때는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지만, 그것이 나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을 때는 타인의 삶의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관대했던 것처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죠. 이게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인지 혹은 우리 공동체가 아직 가지고 있는 공통의 한계점인지는 모르지만, 그 한계점과 비교했을 때 ‘나’의 기준은 어느 지점에 도달해 있는지에 대해서 질문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거리낌 없이 받아들여질 수 없는 거죠. 그러나 《딸에 대하여》는 ‘거리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학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고, 또 그 지점에서 작가가 이야기하는 용기를 경험할 수도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Q. 응우옌 하링 Nguyen Ha Linh
이 책은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비교적 보수적인 엄마의 관점에서 쓰였습니다. 그래서 책을 보면 여러 차례 ‘LGBT+’ 커뮤니티에 속한 독자들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는 성차별적인 생각과 심지어는 아주 신랄한 대사들도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봤을 때 편집 과정에서 예를 들어 엄마의 차별적인 대사와 생각을 좀 더 부드럽게 바꾸려는 일종의 편집자의 자기 검열이 의식되지는 않았는지요?

A. 박혜진 Park Hyejin
이야기라는 형태를 가지고 있는 장르라면 어느 정도 비슷하게 통용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 느끼는 즐거움 중의 하나는 인물이 변해가는 과정을 보는 것 같아요. 그걸 성장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주 다양한 성장의 양상 속에서 소설의 시작과 끝에 인물이 변해가는 과정을 보는 게 소설을 읽는 큰 즐거움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딸에 대하여》라는 제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엄마의 시선으로 딸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고, 그렇듯 엄마가 변해가는 과정이 이 책에서 매우 중요하죠. 엄마가 딸에 대해 처음에 품고 있었던 신랄한 생각들, 성소수자에 대해 품고 있던 생각들이 변해가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겁니다. 물론 딸에 대해 처음 품었던 생각과 태도가 완전히 바뀐 건 아니지만, 부정하고 외면하던 것에서 벗어나 그 삶에 가해지는 폭력의 현장들에 같이 서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품고 있었던 선입견 혹은 편견이라는 것이 이들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폭력들을 만들어내는지를 경험하면서 딸을 바라보고 딸의 여자친구를 바라보는 시선이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 변화의 과정이 이 소설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전개 양상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사자에게 가해질 상처 때문에 변화 이전의 태도나 마음을 표현하는 말의 톤을 굳이 부드럽게 바꾸는 게 이 책이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소설을 볼 때 표현되는 양상들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통해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어떤 의식, 주제를 전달하고자 하는지, 그리고 그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었는지를 판단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불필요한 것이라면 검열의 과정을 적극적으로 발동시켜서 수위를 조절한다거나, 불필요한 상처를 유발하는 것들을 편집 과정에서 막아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필요 이상의 자기 검열이 오히려 이 주제 의식을 전달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지점에서 엄마가 가지고 있는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검열이나 편집의 대상으로 보지는 않았습니다.

또 엄마가 가진 생각이 통상적으로 시대가 가지고 있는 감각과 어느 정도 괴리되어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도 매우 중요할 텐데요, 이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저나 작가, 편집부의 생각으로는 엄마가 가진 생각의 수준이 우리 사회가 공유하고 있는 집단적인 감각들, 성소수자에 대해서 품고 있는 감각들과 크게 배치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지점에서 오히려 엄마를 통해서, 엄마에게 감정을 이입함으로써 엄마가 변해가는 과정에 더 적극적으로 동참해 그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고,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소설을 덮었을 때 많은 것들이 변화해 있는, 성장해 있는 그런 과정을 볼 수 있는 수준이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우려하셨던 것처럼 검열을 많이 의식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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