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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참가자정보

박정선

지난프로그램 / 2020 프로그램 / 박정선

인터뷰 영상

국가한국
이름박정선
출판사김영사(비채)
이메일von2rock@gimmyoung.com
출판사 소개
비채는 김영사의 문학 브랜드로서 지난 2006년에 시작됐습니다. 영미권의 프리미엄급 스릴러 작품을 엄선한 ‘모중석 스릴러 클럽’, 본격 추리부터 청춘소설까지 일본 문학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아우르는 ‘블랙 & 화이트’,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고전부터 현대의 문제작까지 선보이는 ‘모던 & 클래식’ 등 ‘매혹적인 이야기의 세계’를 이뤄가겠다는 일념 아래, 꾸준히 400여 권의 책을 선보여왔습니다

에세이

코로나19가 출판계에 미친 영향

며칠 전 출근길, 정류장으로 들어오는 버스를 달려서 겨우 따라잡았는데 타지도 못한 채 보내버리고 말았습니다. 버스 유리창에 비친 얼굴을 보고 마스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서였지요. 대중교통 이용 시 마스크 착용은 의무라는 사실을 떠올리기도 전에, 이미 얼굴이 달아오를 만큼 곤혹스럽고 죄지은 듯한 기분마저 들어 차에 오르지도 못했습니다. 부랴부랴 근처 편의점에서 마스크를 구매해 코와 입을 덮은 뒤에야 버스를 탔습니다. 아니, 탈 수 있었습니다. 2020년 이 땅에서 ‘맨얼굴’이라는 사실에 화들짝 놀란 적 있는 사람이 나 한 명뿐일까요.

한국에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 지 약 여덟 달.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하얀 마스크로 얼굴 절반을 가린 풍경, 어딘지 섬뜩하고 씁쓸한 그 광경에 익숙해졌습니다. 저녁 뉴스 첫 꼭지로 신규 확진자가 몇 명인지 알리는 시대를 살고 있고 거기에도 익숙해졌습니다. 이 사태는 언제쯤 종식될까. 이전 같은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바이러스는 세상을 어떤 방향으로 바꿔놓(았)을까. 눈 밝은 사람들의 관심사는 이미 그쪽으로 향해 있을지도 모릅니다.

책으로 살아가는 출판계 종사자이자 책으로 말해야 하는 편집자이기에 지금의 사태 또한 자연스레 책의 관점에서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반년 넘는 시간 동안 보고 듣고 생각한 일 가운데 인상적인 것 위주로 늘어놓아 보려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을 담겠지만 때로는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보편적이리라 믿으며.

하나. 올해 초 몇몇 출판사에서는 코로나19를 시사적으로 다루는 책의 출간을 두고 갑론을박을 펼쳤다고 합니다. 이런 ‘시의성 높은 책’을 낼 것인가 말 것인가 하면서. 또 한편에서는 온라인 등교가 길어지자 그 반동으로 어린이 책 매출이 쑥 늘었다는 해프닝 같은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누구도 이 사태가 봄을 넘고 여름을 지나 향후 수년을 점칠 정도로 지속될 줄 몰랐지요. 2009년 신종플루의 경험을 떠올리며 그 수준에서 마무리될 거라 예상했습니다. 안이했다기보다는 희망적이고 긍정적이었다고 해야겠습니다.

둘. 회사 앞에서 버스 한 번이면 대형서점 근처까지 갈 수 있어서 금요일 오후에는 서점에 들를 때가 많습니다. 어느 금요일 오후에도 (마스크를 꼭꼭 쓰고는) 습관처럼 서점에 들렀지요. 서가 사이를 지날 때면 바닥에 앉아 있는 사람을 피하느라 바쁘던 서점이 휑뎅그렁하게 비어 있었습니다. 늘 책 읽는 사람으로 가득하던 대형 나무테이블에는 심지어 빈자리가 보였고요. 밖으로 나오는 사람이 줄었음을, 서점을 찾는 사람 또한 격감했음을 체감했습니다.

셋. 서점을 찾는 사람이 적어진다는 것은 책을 보고 만지고 구매할 독자가 줄어든다는 의미인 동시에 서점을 통해 책을 알릴 기회가 줄어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상이 되면서 여러 사람이 모이는 일을 지양하게 됐습니다. 모든 형태의 오프라인 도서 행사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지요. ‘저자와의 만남’도 ‘저자 강연회’도 ‘출간 기념 사인회’도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도서관마저 개관과 휴관을 거듭하면서 지역 단위로 진행되던 이벤트도 일제히 사라졌습니다. 새 책을 알릴 루트는 온라인만 남은 상황이 됐습니다. 소규모 독서 문화의 첨병으로 자리 잡은 독립 서점에서는 SNS를 이용한 행사를 자체적으로 이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곳곳에서 활발하게 진행되던 ‘독서 모임’도 온라인으로 하나둘 거처를 옮겼습니다.

넷. IT 기업을 중심으로 재택근무가 활발해지는가 하면 학교는 온라인 수업으로 바뀌었습니다. 바이러스를 옮기거나 옮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도 집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됐고요. 교실에 갈 수 없는 학생, 사무실에 갈 수 없는 직장인은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갑자기 ‘가용 시간’이 많아지자 사람들은 넷플릭스나 왓챠 같은 OTT 서비스로 몰렸습니다(주요 업체는 상반기에 작년 대비 두 배 가까이 성장했다고 합니다). 편집자끼리 모이면 “세상에 재미있는 게 이렇게 많은데 누가 책을 읽겠느냐”라고 농담 섞인 한탄을 늘어놓지만, 취미 혹은 여가로서의 독서는 상당 부분 스마트폰과 태블릿으로 대치됐음을 인정해야 할 겁니다. 다만,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OTT 업체의 상승세는 눈에 띄게 둔해졌습니다. 어느 정도 소비를 끝낸 사람들은 또 다른 ‘재미’를 찾아 유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외려 지금이야말로 자세를 고쳐 앉아 고심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세상에 재미있는 게 이렇게 많은데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하고.

다섯. 2020년 9월 초순 기준, 세계 코로나19 확진자는 약 2,700만 명을 넘겼고 사망자는 약 90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전 지구적 재앙 때문에 국가 간 왕래가 어려워지고 외지인이나 외국인에 대해 배타적인 시선이 늘었지요. 외국 여행이 불가능해지면서 항공사와 여행사는 심대한 피해를 받았습니다. 여행을 갈 수 없는 세상은 여행서를 고사시켰습니다. 해외여행 가이드북은 내년에 개정판이 나올 수 있을지 없을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해외여행이 저물자 반대급부로 국내여행이 부상했습니다. 서점의 여행서 평대에서 해외여행 가이드북이 사라지고 국내여행서가 자리를 채운 모습은 신선하면서도 생경했습니다.

여섯. 여행 산업의 근간이 흔들리면서 항공사의 위기가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사람 간 접촉이 급격히 줄거나 금지되면서 식당과 노래방 등은 치명적 타격을 받았지요. 파일럿이나 승무원마저 무직자가 될 수 있다는 현실, 수백만 자영업자가 폐업을 고심하는 냉엄한 현실 앞에서 막연히 미래에 대한 불안이 피어났습니다. 그러자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 관련 서적이 베스트셀러 차트 상위권으로 뛰어올랐습니다.

일곱. 책의 성공과 실패는 대개 수개월 정도면 판가름 나고 그에 따른 명암이 엇갈리기 마련이지만, 이토록 급격하게 세태가 반영되고 특정 분야가 휘청거릴 만큼 변화가 극심한 적이 있었나 싶습니다. (비채가 속한) 김영사 같은 종합 출판사는 한쪽이 뜨고 한쪽이 진다는 생각으로 힘겹게나마 견뎌낼 수 있는 파고입니다. 그러나 한두 분야에 특화된 중소 출판사는 절벽 코앞까지 떠밀렸을지도 모릅니다. 출판 또한 여타 산업과 마찬가지로 한 회사의 부침이 수십 수백 명의 생존과 연결됩니다. 더 정밀하고 촘촘한 현황 파악과 지원 대책이 필요한 건 아닐까요.

여덟. 출구조차 보이지 않는 ‘세계적 전염병’ 앞에 무엇을 예상할 수 있을까요. 초반에는 저마다 자기 아는 범위 내에서 전망 내지 예측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태가 길어지면서 전망 대신 간절한 바람을 품게 됐지요. 예전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고. 마스크를 쓰지 않던 시절로. 카페에 모여 앉아 왁자하게 떠들던 시절로. 모르는 사람과 나란히 앉아도 두렵지 않던 시절로. 9·11 테러가 벌어지기 이전, 항공기 테러에 대한 경각심이 낮던 시절에는 반입 수화물 규제도 느슨했습니다. 100밀리리터가 넘을까봐 마시고 버리느라 바쁜 요즘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코로나19가 세상을 얼마나 바꿔놓고 우리가 거기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적응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미래에도 지금처럼 마스크를 쓰고 외출하는 일이 당연하게 느껴질지. 사람들은 대면 접촉 대신 인터넷으로만 만나게 될지. 아니면 독감처럼 며칠 앓고 넘어가는 병이 될지. 그리고 그 세상에서도 책은 여전히 지식이나 정보를 전하는 매체, 이야기와 감동을 전하는 수단, 메시지를 던지고 사회를 변혁하는 미디어로서 제몫을 하게 될지.

한 시절을 대표하게 된 단어가 제법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98년은 ‘IMF’로, 2002년은 ‘월드컵 (4강)’으로 영원히 회자될 것입니다. 긍정적 방식으로든 부정적인 방식으로든 삶을 뿌리부터 흔들어놓으며 장기간 입에 오르내리고 나면 본 의미를 훌쩍 뛰어넘는 단어로 머릿속에 등재됩니다. 아직 2020년은 끝나지 않았고 팬데믹은 지극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사태의 향방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매우 높은 확률로 이 시절을 ‘코로나’라는 단어로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다만 바라건대 하루빨리 코로나의 시대를 그저 이따금 ‘회상’할 수 있게 되기를.

'코로나 시대에 함께 읽고 싶은 책' 소개 영상

소개영상

책 정보

생각의 시대
김용규/김영사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혼비/민음사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조정진/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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